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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단행본 <펼침의 미학>에서 발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강한 영감에 의하여 시작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FEEL이 시도 때도 없이 일상 중에 불쑥불쑥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경우는 그림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또 미로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여 헤매다가 영감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작품을 만들려는 의도적인 행위에 앞서 극히 자연스러운 조우가 되는 셈이고 하다 보면 예기치 않았던 월척을 건지는 행운도 만난다는 뜻이다.

 

   그림이 뭐 별것이던가?

나처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 두 작품을 하는 사람의 경우에 그림이란 바로 나의 삶, 그 자체이자 일기와 같은, 생활 속에 녹아있는 '비타민'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강한 FEEL이 오지 않으면 '캔버스'에 손도 대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보통사람인데 어찌 그런 행운이 매일 다가오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붓놀림을 멈추지 않는다. 어찌 맑은 날만 있으랴? 그저 야심한 밤에 아낙네 혼자 물레를 돌리듯 꾸준함을 잃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만 인지할 뿐이고 못 나도 다 내 자식이며 열 손가락 깨물어도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고 내 귀여운 분신들이다. 무슨 재주로 나가는 고깃배마다 만선이 되어 돌아올 리가 있겠는가? 그게 또 인생이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림의 '뎃상', 또는 '스케치'는 화장품으로 친다면 기초화장이고 색을 덧입히는 것은 색조화장이다. 기초가 되어 있지 않은 피부에 덕지덕지 색조만 바른다고 예쁘질 리가 없는 것과 흡사하다. 그러한 기초 위에 FEEL이 떠오르면 좋은 작품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 최근에 내가 시도하는 이러한 성향은 하나의 평면작업에서 오는 한계에 관련한 일종의 반작용일 수 있다. 게다가 내가 하고 있는 이러한 일련의 디지털 작업이 충분한 특성을 보여지기를 기대하는 바도 작용 하였으리라 믿는다. 문제는 단순히 표현의 진보된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는(Endless) 도전을 통하여 또 다른 자기만의 길을 개척할 명분을 가진다는 데 있다.

 

누군가 그랬다.

'연애는 기술이고, 사랑은 마술이다'라고.....

나는 그 마술을 위하여 지금도 밤을 새워 기술을 연마하고 있다.

그 마술의 황홀함을 익히 알기에......

 

   Fiesta는 원래 스페인계, 라틴아메리카에서 행해지는 축제인데 리오의 카니발 같이 광란적이거나 요란스럽지 않은 가운데 진행되는 종교적 퍼포먼스로 상당히 경건한데다 어떤 신에 대한 의식 같은 아주 절제된 축제다. 그럼에도 라틴계열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불같은 뜨거움으로 절정의 축제는 정말 대단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신에 대한 경배로 의식의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다. 그들은 신을 향하여 춤추고 노래하며 이 기간을 통하여 그들의 압축된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고 정화하는 것이다.

 

   이 추상작품에는 요란한 색의 향연만 없어도 어떤 메시지나 애써 의도된 흔적이 없다. 다만 나는 남미의 '피에스타'를 줄곧 생각하며 이 작품을 하였고 그 엔터테인먼트가 주는 신선한 충격을 상상해 보았을 뿐이다. '옥수로 더럽혀진 몸을 씻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회개성 축제이기도 할 것이고 그런 페스티발을 통하여 묵은 한 페이지를 소각하는 의식일 수도 있을 터이다. 아무튼 나는 신명나게 붓질(?)을 해 대었고 그 결과 화면(캔버스)가 일단 모두 메워졌다. 그리고 잔손대기를 그만두었다. 순간적으로 내가 느낀 것을 다듬고 잔손질하면 본래의 의도가 퇴색될까 두려워서였다. 때로 작품은 '일필휘지'같은 찰나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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