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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단행본 <펼침의 미학> 중에서 발췌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늘 무한한 시공(時空)그 자체였다.

얼핏 보면 공간이 나열되어 있음에도 어느 한 구석 시간이 묻어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러한 나열은 하나의 공간 ‘프레임‘에 갇혀있을 뿐, 구도 상으로 내가 취하는 풍경은 시공의 극히 작은 부분이었을 뿐, 정지되어 나를 기다리는 풍경은 하나도 없었다. 어찌 보면 끊임없이 명멸하는 자연의 순환이자 삶의 궤적 같은 것이었다. 매 시각마다 아니, 매 분초마다 색상과 꼴을 달리하는 눈앞의 풍경은 붙들어 맬 수 없는 유기체였고 그릴 방도가 없는, 발 빠른 생명체였다. 그럼에도 낯설지 않은 풍경은 주거니 받거니 소담한 이야기를 나누는 친숙한 벗이었고 때로는 범접할 수 없는 위용과 자태로 군림도 하였다가 때로는 엷은 미소를 입가에 띠우고 나를 부르는 큰 스승과도 같은 대상이었다.

 

   그랬다. 철철이 갈아입는 그의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기면서도 나는 정녕 그가 단 한 번도 나에게 발가벗은 알몸을 보여주지 않는 이유를 몰랐다. 도대체 그 속살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내색 한 번 못 하고 가끔 번개가 치거나 풍랑이 일 때, 그의 허벅지 정도만 곁눈질 하였을 뿐, 그도, 나도 ‘폴리스 라인’같은 저지선을 넘을 이유가 없었다. 마음 한 번 고쳐먹으면 세상만사가 다 편해지는 것은 이런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냥 내 눈 앞에 잇는 그대로를 보면 되는..... 제 깐에는 마치 익숙한 조련사처럼, 때로는 달관한 선인처럼 풍경이란 대상을 눈앞에 두고 오두방정을 떨며 ‘이게 풍경의 진면모다.’하고 시 건방을 떨어도 그는 단 한 번도 눈을 흘기거나 질책을 하지 않은, 大人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

 

   달빛이며 붉은 도시며, 가을소곡이며 전원이야기들을 나만의 해석으로 멍석을 깔고 ‘품바’를 하는 엿장수처럼 호들갑을 떨며 손님을 불러 모아도 그는 본체만체 하였다. 오히려 내가 그의 광대였고 그는 늘 귀빈석에서 관람하는 비싼 손님 같기도 하였다. 당신이라는 풍경을 내가 그렸음에도 그는 내가 풍경인 듯 바라보았다. 하긴 면적으로 보나 부피로 보나 계량 자체가 불가능한 대자연이라는 질량 앞에 티스푼 하나도 되지 않는 나의 존재가 솜털 하나만큼이라도 되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삐져서 돌아앉아도 그는 한 번도 나를 내팽개치거나 홀대하지 않았다. 육중한 무게로 눌러앉은 바위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늘 내 곁에 있었다.

 

   이렇게 작은 내가 그 풍경의 일원인 줄 아는 데 꼬박 60년이 걸렸다.

나는 눈에 비치는 바깥이란 개념의 풍경은 늘 그 자리에 있으므로 무대의 ‘세트‘와 같은 것이고 적어도 움직이는 주체로서의 나는 ’내가 존재하기 위하여 필요한 커튼 같은 것‘이 풍경인줄로만 알았다. 적어도 생명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나는 바로 내가 주연이고 그들은 조연 정도의 역할만 하는 ’백댄서‘ 정도로 알았다는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어느 야산 바위틈에서 피었다가 이름도 없이 시들어 죽은 들꽃이나 인간이라고 돌아다니는 나나 하등 다를 게 없는, 고만고만한 박테리아 같은 존재였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또 자연이나 내 앞에 펼쳐진 일체의 풍경이 바로 나 같은 미생물이 이루어내는 덩어리였다는 사실과 시간차를 두고 산화를 달리 하는 분자 알갱이들이라는 점도 그랬다. 그래서 풍경은 엽서에서 보는 아름다운 장관만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하이에나‘의 시체를 뜯어먹는 검 독수리처럼 무서운 얼굴도 하고 때로는 우수에 찬 가을의 낭만도 각색하는 천의 재주꾼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앞으로는 풍경을 그리지 말자.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퐁당 그 속에 들어가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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