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lick the picture if you want to see the whole size pic.

작가의 단행본 <펼침의 미학> 중에서 발췌
세상 잡다한 생활용품들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이 선반이고 또 평면에 너절하게 어지럽혀져 있던 잡동사니들을 벽면으로 옮기는 보다 공간적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 또한 선반이라 나름대로 많은 의미부여를 한 소재였던 것 같다. 우리가 그리 중요하지 않아도 안고 가는, 같이 사는 생필품들은 사실 우리들의 분신이나 같다. 말 그대로 같이 사는 동반자다. 정리한답시고 마구 버리고 나면 꼭 다시 찾게 되는 것들 말이다. 그래서 옛날 할머니들이 '버리지 마라. 10년 안에는 꼭 쓰일 물건이다'라며 모으기 시작한 잡동사니들은 어느새 집을 고물상처럼 만들고야 만다. 그나마 선반이라는 유용한 설치물을 잘 이용하면 쓰레기장은 면하게 되지만.
그 (어깨에) <지고>, (머리에) <이고>, (가슴에) <안고>사는 것들이 어찌 소중하지 않겠는가? 이때의 지고, 이고, 안고 사는 모든 것이 반드시 사물에만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형이상학적 요소를 비롯한 인간관계도 그러하다. 물론 사용연한이 다 되어 용도폐기하거나 변질로 인한 폐기처분이야 어쩔 수 없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것들은 그 가치가 존속하는 것이다. 바로 이때, 우리는 그러한 모든 것들을 '파일' 정리하듯 분류를 필요로 하고 '오프라인'상에서 는 선반 같은 설치구조물이 필요로 한 것이다.
나처럼 이사를 많이 한 사람은 이사 때 마다 버리는 것이 큰 일 중에 하나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무슨 판정관이라도 되는 양, '이것은 버리고, 저것은 안 돼' 하는 식으로 교통정리를 하지만 거의 반세기 동안 버리지 않고 싸들고 다니는 물건들 중에 상당수 책들도 그러하고 특히 오래되어 종이 자켓이 거의 삭아버린 LP '레코드' 판들이 한 예다. 요즘은 어디 그런 판들을 한번 재생이라도 해 볼 양이면 '턴테이블'을 구하기도 어렵지만 40년도 훨씬 더 된, 학창시절의 음악들이라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그래서 분신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나와 함께 사는 오랜 벗으로.....
마음 하나 가지런히 선반 위에 올려놓는다.
드리워진 음영의 굴곡을 따라 모래톱 같은 상념들이 밀려오면서 그 안에 묻힌 그 숱한 기억들이 저마다의 영역을 나누고 작은 도시를 만든다. 빛을 받아야 할 곳과 그늘이 되어야 할 곳이 정해지면서 '파키스탄'의 국기처럼 그믐달의 숨죽인 울음은 시작되고 새벽을 기다리는 의식은 시작되었다. 무수히 소멸되고 또 그렇게 무수히 생성되었던 많은 생명들의 분진들이 침전되고 퇴적되면서 영토의 지도 그리기가 마쳐졌다. 정리가 끝난 것이다.
이제 과감히 내다 보여도 손색이 없는 '디스프레이'를 끝냈다고 생각할 즈음, 이런! 가장 중요한 것을 빠트렸다고 생각되어 그 까칠한 '마티엘' 위에 면도날 보다 더 예리한 기계적 개념의 현실 하나를 더 삽입하였다. 그것은 내가 설치한 인위적인 선반이라는 개념의 '샤프네스'(Sharpness)를 강조하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였지만 인간과 자연, 음과 양의 조화에 기반을 둔, 조화의 공식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