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Release

KTV- documentary-45 min. 2011
 

        JinKook Oh has received much attention from the media

 

  Perhaps the biggest reason why he is considered to be a pioneer in the cross media is due to the use of his own computer techniques in the genre of pure art. Using mixed genres such as non-design disciplines,

from fine art was a kind of novel experiment in S. Korea.

He was able to carve his paths to develop an unique style due to strong beliefs about artistic values and cultural interactions by overcoming prejudice of the majority

in the mainstreams of contemporary art. 

 

Artists themselves are not confined, but their output is.

SBS-TV <Digital meets Art> Program-45 min.2012

SBS- Culture Club Interview

ABS Potcast Interview

Cover stories were published in the magazine 'One of the leaders a new era of Korea's leading role' 2012 

Magazine/ Economist

Broadcasting/ SBS-KNN

Newspaper/ Daily Sports

Magazine/ Queen 2006

Magazine/ Power Korea

Newspaper/ Maeil Economy

Broadcating/ MBC Busan

Newspaper/ Busanilbo

Newspaper/ Sports Seoul

Internet Newspaper/ Daily Pop

Weekly Series 1~46. in 2015

Monthly Magazine/ JungAng-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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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City Hall/ Hi. Seoul Interview-2011

   작가 오진국은 국내에서 수 많은 메스컴의 주목을 받은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한국문예진흥원에서 발췌한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500인 명단 중에 유일하게 '디지털아트'라는 장르로 이름을 올릴만큼 자신만의 독창적인 미술세계를 개척하였다. 누구보다도 탄탄한 미술기초를 다진 그가 기존 작가들이 외면한 컴퓨터아트를 독학하여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였음에도 그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접목하는 '크로스미디어' 즉,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 화법으로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나간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가 많은 언론에서 주목을 받는 이유가 바로 그런 개척정신과 '이노베이션'이라 불릴만큼 혁신에 앞장을 섰기 때문임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안병태/ 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Holy Ecstasy, 신성한 엑스터시란 표현할 수 없을만큼 경이로운 것, 일종의 기적이다. 왜냐하면 고뇌를 희열로 변형시키는 연금술사의 기술일 뿐만 아니라, 사람 몸의 세포구조 안에서 분자의 변형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이 이미 엑스타시에 빠져 두뇌변화가 일어난 상태에서 그려진 오진국화백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함께 말할 수 없는 흥분과 충만, 전율을느끼게 되어 내 과거라고 부르는 것까지도 변화가 일어난다.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이 행복해지고, 그 그림으로 하여 보는 사람들의 현재와 과거, 미래까지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그가 진정한 이 시대의 예술가가 아닐까? 

 

                                           <배찬희/ 시인, 1983년 서울신문사 신춘문예 등단 작가>

작가의 단행본 저서 <펼침의 미학>에서 발췌

디지로그(Digilog)화법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많은 분들이 나에게 질문해오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생소한 이름의 화법에 관한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질문으로 나 역시도 10년 전엔 그런 말조차 생소하였고 그런 유행어 비슷한 말에 그림의 화법이 들어간다고는 상상도 못 하였기 때문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합쳐진 말이 디지로그니까 뜻은 이해한다고 쳐도 실상 그런 것이 실제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작품이 되는 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아시다시피 디지로그란 전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고 중앙일보 고문으로 계시는 이어령 박사가 만든 신조어다. 거부할 수 없는 새로운 대세로서의 차갑고 날카로운 디지털 문화와 느리지만 휴머니즘이 녹아있는 훈훈한 아날로그 문화를 아우르고 합성함으로써 표현 방법을 극대화 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달하는 주역이 될 것을 역설한 그의 책은 나에게 감명을 주기 충분하였고 2005년 이후로 나는 나의 모든 작품을 이 디지로그 작업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응용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으므로 나는 독학으로 많은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통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 분야에서만은 가장 많은 작품을 창작한 사람이자, 독보적 위치를 고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툴’을 다룬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도 아니고 자유자재로 그것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대개의 화가들은 그렇잖아도 기계 문명을 싫어하는데 누가 그 짓을 할 엄두를 내겠는가? 아날로그적인 기초는 당연한 것이고 그것만 공부하려 해도 3-5년은 족히 걸릴 것이 뻔한데 말이다.

 

   내가 이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대표적으로는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해야겠다는 것이 가장 우선이 아니었나 싶다. 앞서 말한대로 기존의 화가들은 대개 컴퓨터에 문외한들이 거의 대부분이라 접근 자체를 못 하고 요즘 세대의 젊은 사람들은 컴퓨터를 너무나 익숙하게 다룸에도 돈이 안 되는, 또는 취업이 안 되는 과목을 건드릴 이유가 없어 안 하고....등등의 사유로 인하여 이 새로운 뉴미디어 기법을 다루는 분야가 사각지대가 생긴 것이었다. 아무튼 나는 이 불모지에 깃발을 꽂았고 보다 대중과 친숙한, 대중적 창작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내가 확신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무리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이런 변화를 막을 재주는 누구에게도 없을 뿐 아니라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트랜드가 아닌, 확고한 장르로서 자리매김을 할 것이라는 데 의혹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화단을 이끌고 있는 화가들의 99.9%가 아날로그 작업을 하는, (대학에서 그리 배워왔고, 그것만이 수단이라 믿는) 사람들이라 디지털이나 디지로그 같은 컴퓨터가 들어가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라는 사고가 팽배해 있어 그러한 인식을 뚫는 것 자체가 창작활동을 하는 것보다 더 힘들고 쓰린 현실로 앞길을 막았다. 누구나 그렇듯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 한 사람들일수록 자기 것만이 최선이라 믿기 때문에 어디에도 새로운 시도가 발 붙일 곳이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가진 확신이 대단히 진보적인 것이며 새로운 개척이라 굳게 믿고 있었으므로 누가 뭐래건 내가 세운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때로는 거친 무쏘의 걸음처럼 달리기도 하였고 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노도와 같은 질주도 하였다. 그런 세월을 지나오면서 이 분야에 관심 가진 사람도 많이 나타나고 격려와 성원을 해주는 사람들도 예전에 비하여 많이 나타난 것이 그나마 소득이었다.

 

   사실 그런 것이다. 내가 어떤 표현을 위하여 크레파스를 사용하건 유화물감을 쓰건, 4B 연필을 쓰건, 또는 골판지 위에 그림을 그리건, 컴퓨터가 사용되건...그런 도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창작이다. 창작에 무슨 재료를 제한한단 말인가? 문제는 결과물이 말해주는 것이지, 작업의 프로세스는 하등 따질 일도, 알아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할 수 있다면 캔버스 위에 ‘프리즘’이나 ‘스펙트럼’ 같은 광학성 물질을 올려놓으면 안 되는가? 그리고 내 그림에서 소리가 나면 법에 저촉을 받는가? 내가 그동안 공부한 것, 내가 속한 단체에서의 위치, 그리고 벌어먹고 사는 일에 도움이 안 되니까 외면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싸잡아 ‘내가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 이외의 것은 모두 아류다.’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지의 산물이고 시대를 역행하는 처사임을 알아야 한다.

 

   길거리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수단에서 보라.

불과 3-4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하였을 온라인 소통을 ‘스마트폰’으로 하는 젊은이들이 이제 그 괴물 없이 하루라도 살 수 있는가를.... 시대는 변하고 융합이니 ‘글로벌’이니 한류가 세계를 휘젓고 다니는데 어찌 그다지도 꽉 막힌 예술가들이 많을까? 그것도 하나같이 말이다. 감히 내가 단언하건데 앞으로 10년 내에 길거리에서 학생들이 그 무거운 가방 메고 학교에 등교하는 모습은 사라질 것이다. 무슨 참고서며 사전이며 그 무거운 책들을 메고 등교를 하겠는가 손 안에 작은 저장장치 USB하나면 책 만 권을 담아 다니는 세상에..... 미술시간에 스케치북이며 파레트, 붓들도 가지고 그림 작업을 할 줄 아는가? ‘태블릿’으로 그림 그려 선생님께 파일로 전송하면 간단하지......그저 그런 재래식 아날로그 그림은 전문가나 하면 그만이지 그런 강요는 자연히 사라질 것이 자명하다.

 

   이래저래 나는 외롭고도 황량한 벌판을 가로질러 여기까지 왔다.
알아주거나 말거나 돈이 되거나 말거나, 유명해지거나 말거나 하나의 목표만 보고 전속항진 하였다. 언제나 조금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은 곤궁하기 마련이고 사투를 벌여도 포상을 받지 못 하는 법이다. 그게 신경이 쓰이면 안 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나를 폄하하거나 음해하는 사람들에게 앙칼진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일만큼 중요한 지킴이 역할이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나에게 숱한 시간 개인지도를 받던 후학들마저도 등을 돌리며 마치 알지 말았어야 할 것을 쓸데없이 배웠다는 식의 말이 떠돌면 그 선생의 기분은 어떠했겠는가? 그럴 때마다 예수님의 마지막 성찬이라는 그림이 뇌리에 떠올랐다. 
‘주여 저오니까?.........‘ 답은 이외로 명쾌한 것에 집약된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고 또 이러한 디지로그 기법이야말로 신 한류를 지향하는 최선의 병기라는 점을 널리 알리는 일이다. 그렇게 10여 년을 달려온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런 장을 통하여 극히 제한적이고 일부이긴 하지만 적어도 개념으로서의 디지로그, 그리고 작업 프로세스로서의 디지로그를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더 이상의 ‘디테일’한 질문이 계신 분은 개인적으로 나에게 연락을 취하거나 메일을 통하여 질문을 해 주시면 능력이 닿는대로 도와드릴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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